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환상적인 MLB 데뷔, ‘올스타 투수’ 공략하며 첫 안타 신고… 첫 득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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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데뷔전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왜 이정후(26)에게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505억 원)를 투자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한 판이었다.

 

실전 감각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메이저리그(MLB) 올스타 투수를 상대로 시범경기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신고한 뒤 기민한 주루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까지 올리는 힘을 보여줬다.

 

현지 팬들의 환영도 대단했다. 첫 경기를 무난하게 치른 만큼, 이제 메이저리그 개막을 향해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2월 28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5시 5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 2024시즌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 2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가벼운 옆구리 통증으로 팀의 시범경기 개막전에는 나가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고른 이정후는 이날 첫 경기부터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팀의 믿음을 보여줬고, 안타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정상적인 컨디션을 선보이며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중견수)-타이로 에스트라다(2루수)-라몬테 웨이드 주니어(1루수)-호르헤 솔레어(지명타자)-윌머 플로레스(3루수)-패트릭 베일리(포수)-케이시 슈미트(유격수)-엘리엇 라모스(우익수)-루이스 마토스(좌익수) 순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고 선발투수는 조던 힉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에 맞서 시애틀은 딜런 무어(2루수)-도미닉 캔존(좌익수)-미치 가버(지명타자)-루크 레일리(우익수)-타일러 라클리어(1루수)-해리 포드(포수)-사마드 테일러(중견수)-마이클 차비스(3루수)-라이언 블리스(유격수) 순으로 선발 타순을 구성했고 선발투수는 조지 커비를 내세웠다.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출처.MLB.com)

 

시애틀의 선발투수 커비는 2023시즌 올스타에 빛나는 팀의 차세대 에이스다.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애틀의 1라운드(전체 20순위) 지명을 받은 커비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대가 컸던 특급 유망주 중 한 명이다.

 

마이너리그 단계를 빠르게 통과한 커비는 2022시즌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해 곧바로 진가를 드러냈다. 2022시즌 25경기에서 8승 5패 평균자책점 3.39로 팬들을 흥분시키더니, 지난해에는 첫 풀타임 시즌을 치렀다.

 

커비는 2023시즌 31경기에 나가 190.2이닝을 소화하며 13승 10패 평균자책점 3.35로 대활약하며 생애 첫 올스타까지 선정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시애틀의 차세대 에이스다.

 

그런 커비도 이날이 시범경기 첫 등판이었다. 상대하는 첫 타자가 이정후였던 셈이다. 커비는 포심 패스트볼 평균 96.2마일(약 155km/h), 싱커 평균 95.9마일(약 154.3km/h)을 던지는 등 선발투수로서는 빠른 공을 가지고 있다.

 

포심과 싱커의 비중을 합치면 지난해 기준 60%가 넘어갈 정도로 힘 있는 패스트볼을 자랑한다. 여기에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를 주로 섞는다. 완성형 선발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후는 이날 첫 타석에서 커비를 상대로 3구째, 85마일 변화구를 제대로 ‘딱’ 소리 나게 받아쳤고 1‧2루 간을 뚫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데뷔 첫 타석을 안타로 장식한 순간이었다.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 모인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정후를 향해 쏟아졌다.

 

사진|시범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안타를 신고하는 이정후 (출처.MLB.com)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정후는 리드 폭을 크게 가져가면서 상대 투수 커비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에스트라다와 승부 도중 4구째에는 과감하게 2루 도루를 감행하다가 파울이 나오면서 1루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정후는 계속해서 틈을 노렸다. 결국 재차 에스트라다의 타격 전 2루로 질주하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타구가 시애틀 유격수 라이언 블리스 앞으로 굴러갔다.

 

이때 만약 이정후가 스타트를 일찍 끊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병살타로 연결될 수 있는 평범한 타구였다. 그렇지만 이정후의 빠른 스타트와 발 덕분에 2루에서 살 수 있었다. 오히려 이정후는 과감하게 슬라이딩까지 시도하며 2루를 찍은 뒤 송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이며 낮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대 유격수 블리스가 당황한 것일까. 블리스가 그만 포구 실책을 범하며 1루로 공을 뿌리지도 못했다.

 

계속되는 샌프란시스코의 무사 1, 2루 기회.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웨이드 주니어였다. 이정후는 2루에서도 수시로 3루와 3루 주루 코치를 바라보며 계속 주루 플레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주루 플레이까지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정후 (출처.MLB.com)

 

결국 웨이드 주니어가 유격수와 2루수 사이를 빠져나가는 중전 안타를 터트렸고, 이 사이 2루에서 3루를 밟은 이정후는 주루 코치의 사인을 지켜본 뒤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다.

 

포구한 시애틀 중견수 사마드 테일러는 이정후의 아예 홈 송구를 포기했다. 그 정도로 이정후의 스타트도 좋았고, 주력도 뛰어났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데뷔전에서 첫 타석부터 안타를 때려낸 뒤 득점까지 올린 장면이었다.

 

이정후는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1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4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났고, 5회 초 수비를 앞두고 타일러 피츠제럴드 대신 교체되며 이날 자신의 타석을 마무리했다.

 

샌프란시스코 공인 리드오프, 옆구리 부상 아무 문제 없었다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한 이정후는 많은 구단들의 관심을 받은 끝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다.

 

당초 현지 언론에서는 연간 1,500만 달러 수준, 4년 기준 5,500~6,000만 달러 정도의 계약을 예상했으나 이정후 파워는 이를 비웃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양키스 등도 이정후 영입전에 관심을 드러냈고, 경쟁 끝에 오른 가격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를 찍었다. 이정후는 4년 뒤 옵트아웃(잔여 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취득)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까지 손에 넣었다.

 

지난해 전체 타격 지표가 내셔널리그(NL) 최하위 수준으로 처진 샌프란시스코는 코디 벨린저 등 대형 선수들과 연계됐으나 이정후를 선택해 관심을 모았다. 팀 타율, 특히 좌타자와 중견수 부문에서의 타율이 크게 떨어진 만큼 콘택트 능력이 확실한 이정후를 영입해 이를 보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1억 1,3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은 만큼 자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6년 동안 전성기를 내달릴 것으로 봤고, 새롭게 팀 지휘봉을 잡은 밥 멜빈 감독 또한 스프링 트레이닝 소집 당시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가 아니라면 그것도 충격적인 일이 될 것”이라면서 이정후의 리드오프-중견수 투입을 못 박았다.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밥 멜빈 감독 (출처.MLB.com)

 

계속해서 멜빈 감독은 이정후를 놓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특히 삼진이 늘어난 현대 야구에서 이런 모습은 보기가 좋다. 강한 타구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땅볼 타구가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과거 시애틀 매리너스 사령탑 시절(2003~2004년) 한솥밥을 먹었던 ‘일본 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 스즈키 이치로(51)를 이정후를 비교했다. 멜빈 감독은 “이치로가 앞발을 더 많이 움직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배트에 공을 맞히는 방식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사진|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시절의 스즈키 이치로 (출처.MLB.com)

 

다만 이정후의 시범경기 데뷔는 조금 늦어졌다. 가벼운 옆구리 통증 때문이었다. 이정후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정후는 “옆구리에 알이 배겼다. 한국이었으면 뛰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모험을 원치 않았다. 철저하게 관리했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확실하게 나은 뒤 경기에 나가길 바랐다.

 

멜빈 감독 또한 “하루, 이틀 정도 쉬면 될 것”이라면서 이정후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렇게 멜빈 감독의 예고대로 이정후는 시범경기 개막으로부터 이틀을 더 쉬고 28일 첫 경기에 나섰다.

 

“아팠다면 미리 말씀을 드렸을 것이다. 이 정도면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단에서 관리해 주는 거니까 알겠다고 답했다”고 말한 이정후는 28일 경기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과시하며 몸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정후는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뒤 첫해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며 생애 단 한 번뿐인 신인왕을 차지했다.

 

KBO리그 7시즌 통산 884경기에 출장해 타율 0.340(3,476타수 1,181안타) 65홈런 515타점 581득점 2루타 244개 3루타 43개 69도루 출루율 0.407 장타율 0.491 OPS(출루율+장타율) 0.898의 훌륭한 성적을 올렸다.

 

2018시즌부터 2022시즌까지 5시즌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선수로 성장했다.

 

현지 언론에서도 이정후를 향한 기대감이 높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는 이정후를 2023~24시즌 메이저리그 FA 선수 중 10위로 선정하면서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바람의 손자’라는 놀라운 별명을 가진 이정후는 빠른 발을 갖춘 중견수다. 이정후는 과거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팀 동료로 함께했던 김하성의 발자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비록 이정후는 2023시즌 도중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후반기 막판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힘을 기르면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놨다. KBO리그가 일반적으로 공격 친화적인 리그인 점을 감안해도, 이정후는 2022시즌 627타석에서 32개의 삼진밖에 당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타율은 0.349를 마크했다”고 치켜세웠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도 삼진을 잘 당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커리어 하이였던 2022시즌 타율 0.349 23홈런 113타점 85득점 2루타 36개 3루타 10개 5도루 32삼진 66볼넷 장타율 0.575 출루율 0.421 OPS 0.996을 기록했다.

 

당시 이정후는 타율과 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타점 등 타격 부문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MVP까지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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